허원근

untitled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오후 1시 20분쯤 강원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중 최전방 GOP부대의 폐유류고에서 가슴에 2발, 머리에 1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7사단 헌병대는 허 일병이 처음에는 오른쪽 가슴, 두번째는 왼쪽 가슴에 쏘아 자살을 시도했으며 마지막에는 오른쪽 눈썹에 밀착해 사격, '두개골 파열로 인해 사망한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군 수사기관은 허 일병의 죽음이 '소속 중대장의 이상성격에 의한 혹사를 비관한 것'이라며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허 일병의 유가족들은 부대 상관의 총에 맞고 죽었다는 타살 의혹을 계속 제기했다.

그러다 2001년 6월 유족의 진정으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가 조사에 착수했으며, 1기 의문사위는 2002년 9월 허 일병의 죽음이 술에 취한 상관의 오발 사고로 인한 타살이고 군 당국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해 11월 국방부 특별조사단은 총기 사고가 없었다며 허 일병은 자살한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의문사위의 결론을 뒤집었다. 이후 허 일병 사건을 다시 조사한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는 2004년 6월 은폐 주도세력이나 실탄 발사 장면을 목격한 결정적 증인을 규명하지 못한 채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판정을 내렸으나 '타살은 확실'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달 뒤인 7월 의문사위는 기자회견을 열고 "국방부가 사건의 재은폐 시도를 하는 한편, 지난 2월 자료를 확보하는 과정에서는 국방부 특조단 출신인 인모(현 국방부 검찰수사관)씨가 조사관에게 권총 1발을 쏘며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또 특조단으로부터 넘겨받은 자료 등을 확인한 결과 2002년의 헌병대와 특조단 조사는 모두 날조라고 주장했다. 당일 오전에 3발의 총성을 들었다는 주변인물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의문사위는 또 군 당국이 허 일병의 총기번호가 수정됐다는 의혹과 사체가 옮겨졌다는 미국 강력범죄 담당 경찰의 분석, 발견된 탄피 2개를 3개로 늘였다는 의혹 등을 덮어놓고 이 사건을 자살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허 일병 유족은 의문사위 조사 결과를 토대로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서울중앙지법(1심)은 타살, 서울고등법원(2심)은 자살로 판결했는데, 대법원이 2015년 9월 "허 일병의 사인은 진상규명 불능"이라며 군 수사기관의 초동수사 미비에 대해 일부 책임을 물어 3억 원의 배상판결을 확정했다.

국방부는 2017년 5월 1984년 군 복무 중 의문사한 허원근 일병의 죽음을 순직으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허 일병이 GOP(일반전초) 경계부대의 중대장 전령으로 복무 중 영내에서 사망했음을 인정한 것"이라며 권익위원회 권고를 수용했음을 시사했다. 2017년 2월 국민권익위는 1980년대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으로 끝내 사망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허원근 일병 사망 사건'에 대해 고인의 순직을 인정하라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