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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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에 한신대 학생운동 참여 87년 노동운동에 투신. 수원 검찰청 점거농성 구속, 출소 후 수원 부천등지 노동현장 활동. 1992년 8월 29일 오후 역곡소재 수영기계(포장기계제작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직장동료들과 간단히 술자리를 한 후 구로역에서 헤어져 시흥동 소재의 친형(박영순)집으로 귀가하던 중 구로역 인근에서 실종 됨. 당시 박태순은 병무청의 영장 수취 거부로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이며, 군기피자로 분류되어 기무사의 집중적인 감시와 추적을 받고 있었음. 박태순 실종 후 집에서는 박태순을 찾기 위해 연락 가능한 친구, 동료, 선후배에게 행방불명 사실을 알리고 소재지 파악에 나섰고, 혹시 불신검문에 걸려 군대에 입영되거나 구속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내무부, 검찰청, 경찰관계자 등을 통해 확인했으나 박태순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8월 29일을 전후한 교통사고 사망자 중 20대 후반의 사람을 찾기 위하여 구로경찰서, 석수파출소, 인근 병원 등을 찾아 다녔으나 끝내 찾지 못함. 2001년 2월 15일 의문사진상위원회가 행방불명된 날 시흥역에서 열차사고로 무연고자 처리된 것을 밝혀내고, 벽제 무연고자 납골당에서, 행려사망자로 취급되어 9년 세월을 보낸 열사 유골을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